[이주호의 경제읽기] ‘미국 없는 세계’ 어떻게 달라질까?
[이주호의 경제읽기] ‘미국 없는 세계’ 어떻게 달라질까?
  • 이주호 앵커
  • 승인 2019.11.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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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의 책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에 이어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김앤김북스)」를 통해서 앞으로 세계 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세계의 질서 유지 역할을 하던 미국이 발을 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지 상상하는 책입니다. 부제는 ‘세계 질서의 붕괴와 다가올 3개의 전쟁’입니다. 즉, 미국이 세계의 질서 유지 역할에서 발을 빼면 세계 질서가 붕괴되면서 3개의 전쟁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요 골자입니다. 골 때리죠? 혼자 상상하더니 전쟁 날 것이라는 게 결론이라니…

이 책 속에는 해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자 서문에 그렇게 나옵니다. “나는 이 책에서… 해법은 고사하고 헛된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무질서가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제시할 뿐이다…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계속할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을 떨쳐버리도록 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모두가 새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도대체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세계에 무슨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일까요? 찾아보죠.

먼저 미국이 세계 질서 유지 역할에서 발을 빼려고 하는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브레턴우즈 체제를 도입했다.

‣때문에 쌍둥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에 처했다.

‣소련을 견제하려면 이 운명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러나

‣냉전 시대를 벗어났다.

‣미국은 꾸준히 쌍둥이 적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왔다.

‣그래도 에너지 독립 문제가 해결이 안 됐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독립을 이뤄낼 수 있게 됐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

‣냉전도 아니고 에너지 독립도 이뤄냈다.

‣왜 세계 질서를 지키는데 미국만 돈을 써야 하나?

‣미국은 차츰 세계 질서 유지 역할에서 발을 뺄 것이다.

‣이는 이미 정해진 흐름이다.

소설 쓰는 것 같죠? 그런데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을 떠올려 볼까요? 우리나라에 대한 방위비 증대 요구. 호르무즈 해협에서 영국 선박이 나포됐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은 중국, 일본 에너지 수입 길이다. 왜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가?”라며 개입 거부, 미군의 시리아 철군 등등등. 개입을 덜 하려고 하고, 세계 질서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이라고 치부하면서 저 사람이 왜 이러나 싶겠지만 이는 예정된 역사의 흐름이지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트럼프 임기 이후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다면 이런 흐름이 다시 옛날로 돌아갈까요? 가능성이 낮아 보입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전 세계 모든 일을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차츰 발을 빼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어떤 전쟁이 발생할까요?

 

전쟁1: 러시아 vs. 유럽 '지구전(持久戰)’

러시아는 넓은 땅덩어리에 비해서 인구가 매우 적죠. 게다가 땅이 대체로 척박합니다. 생산성을 내기 어려운 지정학, 인구학적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게다가 소련 시대의 연방 국가들은 소련이 해체되면서 다들 유럽과 친해졌고 그 가운데 몇몇 국가는 심지어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속해 있죠. 러시아는 인구가 적어서 국경을 지킬 군인도 부족합니다. (2016년 기준 77만 명) 생산성은 나지 않는데 인구는 적고 지금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생산성은 앞으로도 감소할 운명이라는 거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러시아를 둘러싸고 있는 11개 국가(폴란드, 루마니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를 흡수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좋은 게 많습니다. 인구가 늘죠, 11개 국가와 맞닿은 모든 국경에 군사 배치 안 해도 되니 안보 비용 줄어들죠. 그리고 유럽 견제까지 가능해집니다. 이게 앞으로 수 십 년간 이어질 러시아와 유럽이 국경을 두고 벌어질 지구전이라는 겁니다.

이미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 지구전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남쪽에 있는 크림반도를 합병했습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터키를 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터키는 유럽 국가는 아니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울타리 안에 유럽과 끈끈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원할까요? 아사드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시리아 난민들이 인근 국가인 터키로 자꾸 흘러 들어갑니다. 터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초점을 시리아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과의 지구전을 그나마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터키가 바빠서 참전하지 않는 게 러시아에게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이 동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국가였습니다. 동쪽은 결국 러시아니까 러시아는 영국의 이런 모습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스스로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브렉시트죠. 러시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태의 전개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지구전은 이미 시작됐고, 현재 진행형입니다.

전쟁2: 이란 vs. 사우디 '페르시아 만 전쟁'

브레턴우즈 체제의 시작으로 돌아가 볼게요. 브레턴우즈 체제를 기반으로 세계 무역을 통해 미국은 세계적 동맹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무역이 가능하려면 석유가 있어야 하죠. 그러려면 석유가 풍부한 페르시아 만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입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지역의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깨지는 순간 석유 수급이 순식간에 차질을 빚을 수 있죠), 무슨 일이 있어도 석유의 유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미국은 수 십년 동안 이 지역에 초대형 항공모함을 주둔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셰일 혁명 덕분에 중동 석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 애초에 석유의 원활한 수급으로 가능했던 무역 체계도 미국이 직접 활용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소련을 견제해 줄 동맹국들의 원활한 세계 무역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죠. 그렇다면 이제 미국은 굳이 이 지역의 힘의 균형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이란 핵협상에서 왜 미국만 빠져나왔을까요? 사우디 아람코 석유시설이 이란의 행위로 추정되는 드론 공격을 당했는데 미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죠? 딱히 한 것이 없습니다. 중동의 시아파 맹주 이란과 수니파 맹주 사우디의 힘의 균형을 유지할 미국이 사라지게 되면 이 지역도 앞으로 거대한 전쟁이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전쟁3: 중국 vs. 일본 '유조선 전쟁'

동북아시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일본, 중국, 한국, 대만입니다. 이 네 나라가 합쳐서 15m bpd(barrels per day)를 순수입합니다. 그런데 이 국가들은 원유 생산이 가장 많은 페르시아 만에서 5천~7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공급 사슬의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만약 미국이 세계 질서 유지 역할에서 발을 빼게 된다면 에너지 수급에 가장 큰 차질을 빚게 되거나 굉장히 비싼 가격에 에너지를 들여와야만 하는 운명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동북아시아로 에너지를 수입하는 뱃길 곳곳에 미국 항공모함이 지켜주고 있으니까(수 십 년간 그래 왔으니까)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미국이 뱃길을 지켜주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각국 스스로 원유 운반선을 군함으로 호송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비용이 많이 드는데요, 미국이 중동 지역 질서 유지에서 발을 빼면 중동 산유국들이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울 때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만 그 국가로부터 에너지를 수월하게 들여올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 매우 복잡한 계산과 외교전이 불붙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가 왔을 때, 네 국가는 그냥 각자 도생하면 될까요? 네 국가는 서로 바다를 공유하고 있죠. 이 가운데 해군력이 가장 강한 국가는 일본입니다. 일본이 왜 소위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제9조를 개정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전환하려고 할까요? 제국주의 시대를 다시 불러일으키려고 하는지 그 속내는 모르지만, 당장 현재 상황만 보더라고 너무 당연합니다.

미국이 세계 질서 유지 역할에서 발을 빼면 뱃길을 장악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뱃길을 장악하는 자가 그 지역의 에너지 수입, 제품 수출 길을 완벽하게 차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뱃길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은 가만히 보고 앉아있을까요? 바로 이것이 미국이 발을 뺏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동북아시아 유조선 전쟁입니다.

 

21세기 미국의 탈세계화 전략은 이미 시작

암담하죠? 물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미국이 갑자기 내일부터 “전 세계 미군 철수!” 이런 발표를 할 리 없습니다. 절대로! 하지만 미국이 차츰 발을 빼고 있고 앞으로도 발을 뺄 것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중간 중간 언급했던 것처럼 전 세계 곳곳에 그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미국은 쌍둥이적자를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전 세계에 군대를 파견해 놓으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재정적자’. 전 세계 제품을 다 사들이니 ‘무역적자’. 그런데 이제 냉전 시대가 지났고 미국은 에너지 독립도 이뤄냈습니다. 더 이상 쌍둥이 적자를 굳이 유지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추진하면서 왜 무역적자 축소를 외칠까요? 뜬금없이 나온 돌출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전 세계에 군대를 파병해 왔던 미국이 요즘에는 왜 자꾸 동맹국들에게 방위비를 더 내라고 할까요? 이는 바꿀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인물이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현재 글로벌 시장에 나타나는 현상이 트럼프 때문이라면, 트럼프 임기 이후 이 현상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트럼프 때문이 아닌 바꿀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트럼프 시대 이후에도 이런 현상들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우리는 모두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큰 맥락을 이렇게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아마 많은 것이 달라 보일 겁니다.

이주호 머니투데이방송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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